네스프레소 이벤트로 받았던 시음 노트는 나름 미각 전문성을 요하는 항목이 있었다. 바디감이 어떻고, 산미가 어떻고, 그래서 그건 몇 점이었고 등등 내가 절대적인 기준값을 설정할 수 없는 값을 적어야 했다. 맛을 절댓값으로 기억할 수 있을까? 나중에 다시 기록을 열어 보면 기억을 꺼낼 수 있을까?
정말 산미가 쎈 원두를 만났고, 그걸 5점 만점에 5점이라고 기록했다고 하자. 그런데 시간이 지나 산미가 더 쎈 원두를 만나면 그것도 5점이라 적으면 충분할까? 만점이 5점인데, 5점을 초과하는 점수를 만들어야 하나? TDS 측정하듯 뭔가 측정 장비를 따로 구비해야 하나? 이러자고 쓰기 시작한 시음 노트가 아닌데, 자꾸 이상하게 꼬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기준점이 필요하다
맛은 상대적이다. 어디보다 맛있더라, 어디보다 달더라, 어디보다 향이 쎄더라 등 같은 메뉴는 점점 비교하면서 먹게 된다. 즉 “어디보다”의 “어디”를 하나 고정값으로 둘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똑같은 이름이면서 똑같은 로스팅을 했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맛과 향이 바뀐 적이 있다. 특히 싱글 오리진이 아닌 블렌드일 땐 더더욱 그랬다. 인스턴스 커피도 리뉴얼을 거치면서 맛이 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최대한 기존 맛과 향을 유지하는 것 중 떠오른 것이 카누와 일리였다.
카누, 일리
이 둘은 브랜드 이름이기에 세부적으로는 정확히 제품명도 골라야 한다. 흔히 말하는 카누는 ‘카누 마일드 로스트’고, 일리는 ‘일리 클라시코’다. 일리가 언제부턴가 인스턴스 판매를 시작했기에, 절묘하게 둘 다 인스턴스를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다.
둘 다 내 입엔 잘 맞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딱 이거네 싶은 맛을 준다. 굳이 인스턴스 계열 안에서 둘을 비교하면 일리가 카누보다 조금 더 고소함이 있고, 특유의 향이 조금 더 세게 느껴진다. 물론 카누에서 고소함을 너 느끼고 싶다면, 카누 다크로스트를 살짝 연하게 먹으면 되긴 한다. 그런거다.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고, 쉽게 먹을 수 있으면서, 맛이 거의 변하지 않는 블렌딩이 기준값일 때 상대적인 표현을 쓰기 좋다.
둘 중 뭘로 해도 크게 상관은 없겠지만, 그나마 내가 세운 기준값에 적합해 보이는건 ‘카누’였다. 일리는 먹을 수 있다면 굳이 인스턴스로 먹어야 할까. 캡슐도 있고, 원두 자체를 드립으로 먹어도 먹을 수 있으니까. 카누 인스턴스는 카누 원두나 카누 바리스타 캡슐에서는 똑같은 블렌드를 찾을 수 없다. 변하지 않고 독보적이고 유일해보이지 않는가?
나는 카누 마일드 로스트를 내 기준값으로 정했다.

아! 후보군에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도 있었는데,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정말 너무 혼자 독보적인 맛과 특징이 있다보니, 대조군으로 쓰기엔 혼자 너무 튄 값이라 고려하지 않았다.
그럼 카누 인스턴스 시음 노트부터 써야겠지
기준값을 정한 후, 일단 카누 인스턴스끼리 어떻게 다른지 시음 노트를 써보기로 했다. 사실 이게 예전 글에 짤막하게 스크린샷이 있지만 노트라하기도 뭐하다. 그냥 한줄평이라… 그렇다고 너무 한줄에 얽매이긴 싫으니, 그냥 시음 노트라고 해두고, 하나 둘 쌓아간다.
당분간 정리해둔 시음 노트를 순서대로 올려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