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슐 커피는 추출할 때 어느 버튼을 눌러야 할

무지했다. 그래도 10년이 넘는 세월을 캡슐 커피와 함께 했었는데, 단순한 숫자 계산을 왜 안 했었던걸까? 캡슐 머신에 있는 추출 버튼이 그냥 적은 양, 많은 양을 나눈다는 생각만 했었다. 캡슐 커피 기본 가이드에 나온 추천 추출 모드만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어느 정도 차이가 날지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무지했다.

원두 전체에서 실제 추출할 구간을 찾아라

핸드드립을 본격적으로 내려 먹으면서, 추출수와 원두 용량 사이 관계를 알게 됐다. 분쇄도나 물 온도에도 영향을 받고, 뜸들인 정도에도 영향을 받는다. 물 종류에 따라서도 영향을 받으니, 그냥 모든 요소가 다 영향을 주는 요소다.

핸드드립은 대충 1대 15 비율로 추출수를 쓴다. 추출은 그정도로 하고, 농도 조절을 위해 가수를 한다. 가수는 드리퍼에 내리는 것이 아니라, 추출을 완료한 커피에 물을 더 타는 것이다. 아이스 레시피도 마찬가지다.

잡미

이 원두가 가진 모든 맛을 100%라고 했을 때, 어느 구간의 어느 맛까지만 내가 맛보려 하는지를 골라야 한다. 무작정 100%에 가깝게 추출하면 밍숭맹숭한 맛이나 쓸 데 없이 쓰기만 맛이 더해진다. 이걸 보통 ‘잡미’라 부른다. 라면으로 치자면, 500ml 물이면 충분한 냄비에 굳이 700ml 부어서 한강라면을 만드는 꼴이다. 떡볶이로 치자면, 두 숟가락이면 충분한 고추장을 굳이 더 맵고 진하게 먹겠다고 두 숟가락 더 넣어서 맛없는 떡볶이를 만드는 꼴이다.

잡미가 들어간 커피와 들어가지 않은 커피는 확실히 구분해서 먹어보기 전엔 모른다. 매번 남이 내려주는 에스프레소 베이스 아메리카노만 먹으면 모르고 지나간다. 한약처럼 성분을 끝까지 우려내지 못해 아쉬워하는 그 기분을 버려야 한다. 수박 껍데기 흰 부분을 먹어도 되는데, 굳이 잘 안 먹는 건 거기엔 먹고 싶은 수박의 단 맛이 안 나기 때문이지 않은가. 커피의 잡미가 그런거라 생각하고 과감히 포기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비율 계산

핸드드립은 대충 1대 15 비율로 추출한다고 한다고 하면, 에스프레소도 대충 비율이 있다. 1대 2 비율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이 레시피로 추출 시간이라고 해서 초단위 시간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추출에 쓴 모든 물이 막힘없이 노즐로 다 나온다고 했을 때, 시간과 압력을 곱한 내적합이 수량(물의 양)이다. 그런데, 압력이 수시로 변하고, 원두가 물에 뿔면서 물이 지나갈 틈을 남겨주지 않으면 물이 다 나올 수 없다. 그래서 단순 계산은 어려우므로, 저울을 받쳐서 직접적으로 추출된 양을 재는 것이 편하다.

분쇄도나 로스팅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커피 원두 1g이 흡수하는 물은 1ml를 다. 만약, 원두 1g을 추출해서 에스프레소를 1ml 얻고 싶다면, 전체 투입해야 하는 물은 2ml가 된다. 원두 20g으로 에스프레소 2샷을 뽑는다면, 전체 흘려보내는 물은 60ml고, 에스프레소는 총 40ml를 얻는다는 의미다.

핸드드립과 에스프레소 머신의 대략적인 비율 기준은 이렇다. 그럼 캡슐 머신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캡슐 머신은 과다 추출일까?

캡슐 머신으로 나온 1샷은 정확히 에스프레소 1잔이랑 비교하기엔 너무 묽다. 에스프레소를 먹던 이들이 캡슐 머신을 쓰면서, 에스프레소가 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비율과 추출하는 물의 양에 답이 있다.

네스프레소 오리지널 머신

네스프레소 오리지널 머신은 중급형과 고급형엔 3종류 추출 버튼이 있고, 보급형엔 2종류 추출 버튼이 있다. 리스트레토, 에스프레소, 룽고까지 3종류 중, 보급형에선 리스트레토 추출 버튼이 빠진다. 물론 메모리 기능이 있어서 각자 원하는 추출양에 맞춰서 모드를 바꿀 수도 있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쓰나 싶긴하다. 공식 매뉴얼 상으로는 추출 결과물 용량인지 추출하기 위해 쓰는 물 용량인지 정확히 설명하고 있진 않다.

  • 리스트레토 – 25 ml 추출
    • 가장 짧고 진하게 추출되는 커피입니다. 아메리카노로 드시고 싶으시면 110 ml의 물을 타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진한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습니다.
  • 에스프레소 – 40 ml 추출
    • 아메리카노로 드시고 싶으시면 110 ml의 물을 타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클래식한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습니다.
  • 룽고 – 110 ml 추출
    • 룽고는 이탈리어로 “길다”라는 뜻으로, 에스프레소보다 오래 추출하여 110 ml로 즐기는 커피입니다. 네스프레소 머신의 룽고 버튼을 눌러 네스프레소가 선보이는 최상의 룽고 커피를 즐겨보세요.

난 이게 아직도 헷갈린다. 추출 결과인지, 추출을 하기 위해 쓰는 물의 총량인지. 그런데 내가 쓰는 에센자 미니 머신을 기준으로 보자면 추출을 위해 쓰는 물의 총량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네스프레소 오리지널 캡슐 1개에는 원두가 대략 5.9g 들어간다고 한다. 계산하기 편하게 대충 6g이라 하면, 에스프레소 머신 기준으로는 12ml 정도 추출 결과물을 얻으면 된다. 즉, 추출을 위해 18ml 정도 물을 쓰면 된다. 그런데 리스트레토 버튼 조차 25ml를 흘려보낸다. 그리고 내 에센자 미니엔 리스트레토 버튼 조차 없으니, 에스프레소로 40ml 물을 쓴다. 단순히 원두 무게 비교로 보자면, 모든 캡슐은 이미 과다 추출 상태라 볼 수 있다.

그나마, 네스프레소에서 직접 판매하는 캡슐은 과다 추출을 보완하기 위한 몇몇 방법이 캡슐과 머신에 반영돼 있다고 한다. 공식 설명엔 어디에도 없는데, 이걸 하나하나 분해한 전문가가 등장했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지만, 탐구력 자체는 존경한다.

요약하자면, 원두 가루는 더 가늘게 분쇄했고, 캡슐 테두리에 종이 필터가 같이 들어 있고, 로스팅도 대략 강배전향으로 맞춰져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호환 캡슐을 먹으면서, 맛을 따진다면 그건 결국 정품이 아니라서 챙기지 못한 마지막 1% 퀄리티를 챙기지 못한 탓인거다. 실제 호환 캡슐이 캡슐 모양만 따라서 맞춘건지, 종이 테두리 필터라거나 원두 분쇄도까지 정말 잘 맞춰서 만든건지 우리가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에센자 미니로 그 어떤 캡슐을 쓰던, 에스프레소 추출 버튼만 쓴다. 메모리 기능을 써서 추출량을 더 줄이진 않았다. 정품 캡슐도 먹으니까. 호환 캡슐도 먹다보면, 그래도 여러 요소가 잘 반영된 캡슐이라는 느낌이 오는 캡슐도 많다. 물론 아닌 캡슐도 많다. 그런데 주로 아닌 캡슐들이 싸다. 차라리 호환 캡슐 전용으로 호환 머신을 따로 구비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냥 지금 쓰는 그대로 아직 고장나거나 성능이 딸리진 않으니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카누 바리스타 머신

카누 바리스타 머신으로 오면 추출량 개념이 다시 완전히 바뀐다. 캡슐 모양도 다르고 용량도 다르다. 머신의 추출 모드도 네스프레소랑 다르다.

우선, 캡슐은 9.5g 원두를 담고 있다. 네스프레소 버츄오는 종류별로 용량이 다르긴하지만, 버츄오처럼 용량이 확실히 늘었다. 대충 10g 원두라고 한다면, 에스프레소 머신에서는 30ml 물을 넣어서 20ml를 얻는 것이 통상적인 비율이다. 카누 바리스타 머신은 어느 정도 물을 쓸까? 매뉴얼을 보면 이게 넣는 양인지 결과물 양인지 역시 설명이 모호하다.

  • 에스프레소 추출 – 65ml
    • 에스프레소 버튼을 누르면 에스프레소 버튼이 깜빡이며 머신이 작동을 시작합니다. 에스프레소 약 65ml가 추출된 후 효과음과 함께 추출이 완료됩니다.
  • HOT 아메리카노 추출 – 65ml
    • 아메리카노(HOT) 버튼을 누르면 아메리카노(HOT) 버튼이 깜빡이며 머신이 작동을 시작합니다. 커피 약 65ml가 추출된 후 온수 모드로 자동 전환되어 온수 145ml가 추출된 후 효과음과 함께 추출이 완료됩니다.
  • ICE 아메리카노 추출 – 65ml
    • 아메리카노(ICE) 버튼을 누르면 아메리카노(ICE) 버튼이 깜빡이며 머신이 작동을 시작합니다. 커피 약 65ml가 추출된 후 온수 모드로 자동 전환되어 상온의 물 100ml가 추출된 후 효과음과 함께 추출이 완료됩니다.

아무튼 65ml다. 어쨌거나 과다 추출 느낌이 강하다. 대충 숫자상으로 네스프레소 오리지널이 원두 1g으로 6.78ml 에스프레소가 됐고, 카누 바리스타는 원두 1g으로 6.84ml 에스프레소가 됐다. 거의 비슷하다. 즉, 원두 1g당 변환되는 결과물은 사실 둘이 거의 비슷하다. 그냥 1회 제조로 먹는 커피 1잔의 양이 다를 뿐이란 의미가 된다.

둘 다, 단순히 숫자만 봤을 땐 과다 추출이다. 그런데 정작 먹어보면 과다 추출 느낌은 나지 않는다. 물론 각자 에스프레소 모드로 추출했을 때에만 그렇다. 추출량을 늘려서 분리해서 먹어보면 느낌이 확 온다. 잡미가 섞여서 그렇다. 종종 너무 애매한 맛을 내는 캡슐을 먹을 때, 일부러 에스프레소 추출로 2회 나눠서 내려본다. 거의 다 2회차 추출은 잡미만 남아 있었다. 둘 다 절묘하게 튜닝이 잘 된 상태로 출고했고, 캡슐도 내고 있단 의미가 아닐까.

간혹, 일리 캡슐 머신이 제일 맛있었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똑같은 수치 비교를 해보자. 일리 캡슐은 6.7g 원두로 에스프레소 25ml를 추출한다. 원두 1g당 3.7ml 에스프레소가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두 머신에 비교하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물론 과다 추출 느낌인건 맞으나 벗어난 양 자체가 엄청 줄었다. 이 숫자만 봤을 땐, 일리 캡슐이 풍미가 더 좋고 잡미는 더 없는 한 잔을 만든다고 봐도 될테다. 다만, 일리 캡슐은 위 두 머신과는 캡슐 자체의 밀봉 상태나 조립 상태가 다르다. 즉, 다들 각자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각자 추구한 방향이 있었을 것이다.

숫자는 단순 비교일 뿐, 즐기는 건 개인이다

커피를 이렇게까지 계산적으로 먹어야 할까? 아니기도 하고 맞기도 하다. 허용 범위라 할 수 있는 제한선을 확실히 정하고 그 안에서 잡미 없는 깔끔한 한잔을 맛보고 나면, 최소한의 계산은 필요하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는다. 그래도 숫자에 매몰되서, 숫자로는 볼 수 없는 영역을 놓치진 말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