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스팀잇은 낯설고, 낯선 하이브는 익숙하고

정리할 블로그 중에 스팀잇도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스팀잇 커뮤니티 활동처럼 보이는 모임도 몇번 가졌다. 스팀잇은 블로그와 보상 생태계를 블록체인으로 구현했다. 실제 보상을 나누는 공식이나, 코인을 발행하는 구조까지 이해하고 납득하기까지 상당히 까다롭고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아무튼 블로그 정리를 위해 다시 접속했으니,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해시노드처럼 그냥 삭제할까?

스팀잇 Steemit

스팀잇의 기본 구성은 블록체인이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삭제하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단순히 내용이 남는게 신경쓰인다면 빈 페이지로 수정하는 것이 그나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다. 깊이 뒤지면 기존 글을 다시 찾겠지만, 최소한 1차적으론 가려놓는 방법이다. 내가 스팀잇에 계정을 생성하고 활동했던 시기는 2018년 상반기였다. 대충 작성한 글은 총 22건이었고, 당시에 넣어놨던 코인은 대부분 출금해서 최소한만 남겨놨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빈 페이지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4개쯤인가 수정하고 나니, RC가 모자르다는 메시지가 떴다. RC란게 있었던가? 그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던걸까? 트론에 팔렸고, 창업자가 떠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플랫폼으로서 구조 변화는 어디가 변한건지 안 찾아본 탓일까? 그간 히스토리와 RC 개념을 다시 찾아봐야했다.

기본 구조를 이해하려면 증인과 보상 체계를 알아야 한다

보상 구조를 납득하려면, 스팀(STEEM) 네트워크과 스팀잇(Steemit) 관계 이해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스팀은 거래소에 등록된 코인이고, 스팀잇은 스팀 네트워크를 사용하는 dAPP이다. 스팀잇은 스팀 지갑 역할도 하면서, SNS 형태를 표방한 블로그 플랫폼 서비스다.

원천적으로 스팀 코인을 발행하는 주체는 증인(Witness)이라 부르는 채굴자다. 다만, 증인이 채굴한 스팀은 모두 증인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발굴량 중 일부인 10%만 가지고, 나머지는 스팀 네트워크 생태계에 배포한다. 증인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팀 네트워크 내부에서 투표를 얻어 상위 랭킹 20위에 들어와야 증인이 될 수 있다. 증인 투표에 자금력을 동원해서 어뷰징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란 질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분산 프로토콜 생태계 습성상, 1명이 너무 큰 힘을 가지게 되면 나머지 사용자가 자연스레 빠져나간다. 사용자가 사라진 네트워크에서 채굴자는 그저 채굴 유지비만 낭비할 뿐, 의미 없는 코인을 생산할 뿐이다.

스팀은 스팀파워(SP)와 스팀달러(SBD)로 양방향 변환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스팀달러는 실제 USD $1와 동등한 가치로 유지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사실상 용도가 무의미해졌다. 스팀파워가 실질 활동력이다. 증인 투표에 행세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서로 업보트를 눌러주며 보상을 나눠갖는 힘이 되기도 한다. 스팀잇 안에서 생기는 모든 활동에 스팀파워는 말 그대로 본인의 영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스팀에서 스팀파워로 변환하는 건 즉시 변환 가능하지만, 스팀파워를 스팀으로 변환하려면 일부러 4주 정도 걸리도록 설계했다. 이 또한 어뷰징을 막고, 커뮤니티 운영을 안정적으로 하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한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간단히 구조를 살펴보면, 스팀잇에 글을 작성하고 업보트(좋아요)를 얻어 스팀을 보상으로 받는다. 그 스팀을 거래소에 팔아서 현실 소득으로 삼아도 되고, 스팀파워로 변환해서 서로 업보트를 나눠가지는 힘으로 써도 된다. 그건 개인 자유다. 보상을 나눠받는 배분량 공식은 너무 어렵다. 그냥 간단하게만 이해하는게 편했었다.

그럼 대체 지금 내 발목을 잡은 RC는 어디서 온걸까?

HF20

내가 겪은 낯선 RC 에러는 2018년 하반기에 진행했던 HF20(하드포크)의 영향이었다. HF20 하드포크로 각 개인이 소유한 SP에 맞춰 RC가 생겼다. RC는 리소스 크레딧(Resource Credits)이며, 스팀 네트워크에서 소모하는 트랜잭션 비용이다. 이더리움에 있는 가스와 비슷한 개념이라 보면 된다.

트랜잭션 유발시 내 스팀이나 스팀파워 자체를 소모하진 않고, RC를 소모한다. 그리고 하루에 20%씩 충전된다. 스팀파워를 0에 가깝게 유지한 상태에선 하루에 글 1~2개 정도 작성하면 RC가 바닥난다. 단순히 글 쓰기에만 소모하는 것이 아니다. 팔로우, 리스팀, 프로필 수정 등등 스팀 네트워크의 모든 트랜젝션 유발 활동에 RC를 소모해야 한다. 스팀파워에 비례해서 RC 총량이 늘어나므로, 스팀파워의 용도가 더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스팀잇 활동을 더이상 하지 않으니, 스팀파워를 스팀으로 교체해서 출금했던 탓에 내게 남은 스팀파워는 5정도였다. 마침 스팀 가격이 엄청 하락한 상태라 가볍게 5천원어치 스팀을 다시 사서 스팀잇으로 보냈다. 그리고 글을 수정하면서 현재 기준 RC 소모량을 파악해보니,

  • 새 글 작성 8.89 × 10⁸ RC
    • 단 5분에 1건만 등록할 수 있다.
  • 글 수정 8.95 × 10⁸ RC
  • 댓글 작성 10.9 × 10⁸ RC
  • 업보트 0.737 × 10⁸ RC
  • 팔로우 1.53 × 10⁸ RC
  • 리스팀 3.23 × 10⁸ RC
  • 태그 구독 0.584 × 10⁸ RC
  • 프로필 전체 수정 (이미지+텍스트) 1.50 × 10⁸ RC

댓글 작성이 새 글 작성보다 RC 소모량이 많은 건 엄청 아이러니했다. 물론 최소한으로 2026년 6월 마지막주 기준으로 테스트한 결과이므로, 스팀 네트워크 변동에 따라 소모량은 바뀔 여지가 많으니 참고용으로만 보기로 했다.

스팀파워가 생기니 다시 원래처럼 익숙해졌다

5 SP만 있던 때엔, RC 리필을 엄청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 85 SP가 된 후론 RC를 소모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RC는 하루에 총량의 20%씩 충전된다. 85 SP에서는 소모하는 절대량이 충전 퍼센트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스팀잇 활동을 하지 않는 한, RC가 부족할 일이 없단 의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팀잇 활용처를 다시 떠올려 봐야할까? 아니면 스팀을 활용한 dAPP을 만들어볼까?

어쨌든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스팀잇 정리를 완료했다.

우선은 최초에 의도했던, 예전 글을 수정했다. 간단히 글 자체는 백업해놨지만, 너무 잡스런 이야기만 올려놨던 탓에 딱히 다시 짚어볼만한 소재가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스팀잇을 정리한다는 태스크에 스팀과 스팀파워도 다 없애버릴 것인지까진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콘텐츠 정리만 마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하다.

하이브 Hive

SP가 생긴 김에, 증인 투표나 다시 해볼까하며 기웃대다가 하이브(Hive) 존재를 알게 됐다.

스팀잇의 구조적 계승자

2020년 2월, 트론(TRON)의 저스틴 선이 Steemit Inc.를 인수하면서 기존 스팀 커뮤니티와 갈등이 생겼다. 트론 측이 거래소 보유 STEEM으로 증인 투표를 조작해 기존 증인들을 밀어내자, 기존 핵심 개발자·증인·커뮤니티가 스팀 블록체인을 통째로 포크해서 Hive를 만들고 이탈했다.

하이브 웹페이지에 접속했더니, 정말 익숙한 UI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기존 스팀잇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계승한 덕분에, 너무 익숙했다. 하다못해, 이미 스팀잇에 계정과 스팀파워가 있던 날 기준으로 포크된 덕분에 하이브파워가 그대로 생겨있었다. 이런 형태를 ‘에어드롭’이라고 하던데, 난 에어드롭 당했던 거다.

에어드롭된 줄 모르고, 다시 하이브에 계정 만들어서 지갑을 미리 생성하고 닉네임만 미리 확보하려고 거래소에서 하이브를 5천원치 또 샀었다. 스팀잇처럼 RC가 모자를 수 있으니 대비를 하고 싶었던 건데, 안 사도 괜찮았던 거다. 이번에도 결국 학습 비용을 치룬 느낌이다.

여기도 일단 정리하자

스팀잇을 정리하려고 기웃대다 하이브까지 왔다. 하이브에 하드포크로 남은 내 계정에는 스팀잇에선 정리를 끝낸 콘텐츠가 다시 그대로 남아있었다. RC 걱정하며 일주일 기다리면서 정리하진 않아도 될만큼 HP는 있었다. 그래서 여기도 우선 콘텐츠만 정리하기로 했다. 스팀잇과 양쪽을 동등한 상태로 맞추면 될까 싶었는데, 서로 커뮤니티 자체가 갈라졌으니 엄밀히 등등하게 유지하긴 불가능하니, 콘텐츠만이라도 양쪽을 맞추자 싶었다.

우연히 발굴된 하이브 정리도 완료했다.

스팀잇과 하이브

8년전 내 글에 와서 댓글을 달고 리스팀을 하던 이들과, 내가 가서 구경하던 이들의 타임라인을 다시 하나하나 눌러봤다. 양쪽 모두 이후에도 계속 활동하는 분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아예 안 남아있는 것 같다. 하다못해 하이브쪽엔 “다운보팅 그만해”라는 메시지를 여러번 남기다가 지쳐서 떠난 걸로 보이는 분들도 몇몇 보였다. 스팀잇과 하이브로 분리되면서, 애초에 커뮤니티 전체 동원력과 활동력 자체가 빠지니 다운보팅으로 인해 최소한의 보상조차 얻지 못했던 것 같다.

스팀잇은 여전히 서비스 반응속도 자체가 버벅이고 느리다. 페이지 하나하나 이동할 때 느껴지는 딜레이 타임이 꽤나 걸린다. 반면, 하이브는 스팀잇 대비 쾌적하다. 이 쾌적함은 스팸 글양과 비례하는 느낌도 있다. 스팀잇엔 스팸성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오는 반면, 하이브엔 이런저런 태그에 스팸성 글이 잔뜩있다. 그냥 외국인이 자동번역 복붙글로 계속 도배하면서 보상을 얻어가려는 이들도 많이 보인다. 흔히 말하는 “쌀먹”의 문제가 여기에 적극적으로 개입돼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사용자 국가 분포에 과거엔 잘 보이지 않았던, 동남아시아 국가도 많이 보인다. 증인에도 동남아시아 국가가 있다. 탈중앙화라는 개념으로 봤을 땐 이들도 함께 하는 것이 좋은건 맞으나, 그들의 커뮤니티로 인해 발생하는 스팸은 서로서로 제어하거나 관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스팀잇 자체를 모르는 이에게 지금 다시 간단히 구조 설명을 해줬더니, “그거 완전 스캠이네. 다단계 피라미드랑 뭐가 다른건데”라는 말을 들었다. 2018년에 내가 가졌던 의문을 그대로 다시 돌려받았다. 엄밀히 피라미드 다단계라고 정의할 순 없다. 상위에 있는 증인 20인이 하위 계층 유저의 돈을 갈취하고 있는 구조는 아니니까. 정작 증인이 채굴한 코인을 하위가 나눠받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하지만, 코인이나 파워를 소모할 확실한 용도가 등장하지 않는 한, 소각을 한다고 하더라도 전체 가치는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다.

코인 시장 자체가 다시 부흥하고, 원인을 추정할 수 없는 거품이 다시 끼기 시작하면 커뮤니티가 자연스레 다시 살아날까? 자생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최소한으로 필요한 20인 증인이 언제까지 네트워크를 유지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