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 커피 추출은 손으로 직접 푸는 실타래

2026-06-16

원두 커피를 내리는 기본 원리를 미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예전에 딱히 감흥 없이 먹고 넘겼던 원두도 다시 먹으면 다른 맛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지나간 과거고 되돌릴 수 없다. 그냥 이제 앞으로 먹는 커피에 나름의 루틴으로 적당한 레시피를 찾으면 된다.

직접 내려 먹는 커피의 맛과 향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물, 온도, 추출 속도, 입자 굵기, 마시는 컵 모양 등등 면 갈수록 끝없이 늘어나는 것 같다. 유튜브에서도 온갖 변수 조절로 더 나은 맛을 찾는 사람들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이런걸 하나하나 다 제어하면서 답을 찾으려 하거나, 커피 판매처가 준 레시피를 칼 같이 지키려하면 커피를 내리는 과정 자체가 너무 번거로워진다. 200~400ml 한잔을 위해 너무 투철한 장인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대략 내가 이해한 핵심은 원두 입자에서 얻어내려는 맛과 향을 뽑아내주는 한계선까지만 추출해서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만약 원두 입자에서 추출하는 양이 90%를 초과한 부분에서 잡미를 내뿜는다고 한다면, 90% 미만까지만 추출하면 최선의 맛을 낸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원두의 적정 한계선이 몇 퍼센트인지 몇번 테스트하면서 먹어봐야만 알 수 있다. 대충 대부분 원두는 85~90% 이하에 맞추면 된다는 느낌으로 먹으면 되지 않을까?

티백

티백 타입 커피는 최근 3~4년 사이엔 단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타입이다. 언젠가 기분 전환용으로 한번 샀었는데, 그땐 이런 레시피 개념을 전혀 모르던 때였다. 그냥 무턱대고 녹차 우리듯이 최대한 오래 넣어서 우려먹었다.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잡미만 잔뜩 먹었던 느낌이다.

티백 타입은 제품마다 티백에 들어있는 원두의 양을 미리 알 수 없다. 당연히 분쇄도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상품 판매자가 제품 겉면에 미리 적어둔 레시피를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96℃ 물 180~200ml에서 3~4분을 우려낸다"고 레시피가 나와있다고 하자. 물 양과 추출 시간에서 벌써 딱 중간값이 나와 있지 않으니 계산하기 편한 선을 먼저 정해야 한다. 나라면 물양은 측량하기 편한 200ml로 정하고, 시간은 3분으로 할 것 같다.

티백을 3분간 200ml에 담궈서 추출한 후, 다시 빈 컵을 하나 더 준비한다. 거기는 티백이 적당히 잠길 정도면 충분할 96℃물 50ml 정도만 넣고, 3분 추출이 끝난 티백을 다시 넣어 1분을 더 우려본다.

총 4분이 끝나고, 두잔을 먹어본다. 50ml 정도로 1분만 추출한 2차 추출분이 입에 맞다면, 이 다음부턴 200ml에 4분을 우려먹으면 된다. 그런데 보통 2차 추출분은 쓸데없이 쓰고 밍밍한 맛만 날 것이다.

200ml에 3분간 추출한 1차 추출분 맛은 어떤가? 쓴 맛이 쎄서 줄이고 싶다면 물 온도를 낮추거나 추출시간을 3분보다 더 짧게 가져야 한다. 농도가 너무 연한가? 200ml가 아니라 150ml로 추출수양을 줄여야 한다.

이런 테스트를 2~3번 바꿔가며 하다보면, 적절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참고로 요즘 핸드드립 기준으로 원두와 물의 양 비율을 보통 1:15~1:16 사이를 많이 쓴다. 단순 비교로 치자면, 티백이 원두 10g이 들어있다면 추출할 물의 양은 150ml~160ml 사이일 때 적당히 비슷해진다는 뜻이다.

이미 레시피 예시는 사실 농도가 연할 수 밖에 없는 기준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다시 나한테 티백 커피가 들어온다면, 그냥 티백 뜯어서 원두만 따로 빼내고 핸드드립으로 먹을 것 같다. 그게 제어가 훨씬 쉬우니까.

드립백

드립백도 가끔 선물용으로 생기긴 하지만, 나는 테스팅용 소량 원두를 맛보고 싶을 때 고른다. 무슨 맛인지도 모른채 무턱대고 200g 넘는 원두를 사기는 불안감이 너무 많이 들기에, 여러 종류를 섞어서 넣어둔 드립백이 있을 때 종종 구매한다. 티백에서 테스트하는 방식처럼, 드립백도 테스트하면서 최선의 값을 찾는 재미가 있다. 드립백도 처음엔 뭣도 모른채 그냥 물만 계속 부어서 우려먹는 느낌으로 먹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던 기분이 든다.

앨범을 보다가 2012년에 살던 나는 정말 무지했다는 걸 다시 깨닭는다.

2012년엔 티백과 드립백도 구분 못했다. 반성하자.

드립백은 티백과 차별되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드립백 모양 자체가 제품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핸드 드립을 내려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여과지 하단은 중간 한점으로 모이는 깔대기 모양이다. 그런데 드립백은 패키징 자체가 사각형인 상태라 물을 붓기 위에 절취면을 뜯어내고 컵에 걸쳐보면 하단 부에 튀어나온 부분이 2군데 이상으로 생기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또, 컵 걸치는 부분과 사이즈가 맞지 않아 컵 겉면에 드립백이 붙어있는 상태가 된다거나, 기울기가 수평이 아니라 기울어진 타입일 때도 있다. 일관성 있는 추출 상태를 유지하며 테스트하기에 너무 좋지 않은 구조다.

그래서 나는 결국 원두만 따로 빼내고 핸드드립 장비로 따로 세팅해서 내려 먹는다. 어차피 내가 궁금했던 건 이 블렌딩의 맛과 향이니까, 목적만 달성하면 되지 않겠는가. 드립백 채로 쓰지 않고, 원두만 빼내서 따로 핸드드립을 내리는 분들도 유튜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아마 그들도 그들의 기준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추출 테스트 자체는 티백에서 말한 것처럼 기준 레시피를 중심으로 필요한 변화를 찾아서 제거하거나 더하는 형태로 하면 된다. 이 원두를 어디까지 추출해서 먹어야 나한테 잘 맞는가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프렌치프레스

애증의 장비다. 내가 캡슐 커피로 넘어오기전 내 인생 최초로 샀던 커피 추출도구다. 다만, 거의 안 쓰고 방치중이었을 뿐이다. 핸드 드립 장비가 생긴 이후로는 더더욱 손이 안 가기도 하지만, 여과지가 있기에 써도 이제는 뒷처리가 쉬워졌다.

그래서, 200g 단위 원두가 아니라 500g 단위 원두가 생겼을 때 본격 재미 탐구를 위해 투입하고 있다. 추출 기본 원리는 티백 방식을 따르지만, 분쇄도 자체를 내가 핸드밀로 바꿀 수 있기에 추출 시간과 물 온도 이외 분쇄도도 바꿔서 테스트해볼 수 있다. 또한, 콜드브루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이래저래 장난감 포지션에 들어섰다고 봐야할 듯 하다.

다만, 500g 단위 원두를 거의 안 사고 있어서 현역 등판 하는 일은 자주 나오진 않는다. 그래도 뭔가 여과지를 거치치 않은 거친 맛이 생각날 땐, 프렌치프레스가 답일테다.

핸드드립

핸드드립을 내릴 때 쓰는 드리퍼부터는 정말 본격적인 세상이다. 이걸 찾아보기 시작하면, 추가 장비가 끝도 없이 늘어난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저울, 시계, 신형 필터, 종류별 여과지 등등 온갖 변화를 위한 장비가 등장한다. 글라인더도 여기에 끼기 시작한다. 그래서 핸드 드립을 위한 풀 장비를 세팅하면,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쳐다보게 된다.

핸드드립을 위한 찐 최소 요건은 드리퍼와 여과지만 있으면 된다. 드리퍼 밑에 두는 서버는 도저히 안 되면 그냥 컵이나 다른 그릇을 쓰면 된다. 커피 원두는 분쇄된 걸 구하면 된다. 꼭 브랜드 제품인 정품을 쓰지 않아도 된다. 이케아 노란색 깔대기를 드리퍼로 쓰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너무 쥐어짠 스택으로 보이긴 한다. 핸드드립이란 자체가 나름의 여유를 부리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드리퍼를 찾아보면 종류가 엄청 많다. 칼리타와 하리오만 해도 칼리타, 칼리타 웨이브, 하리오 V60, 하리오 스위치, 하리오 네오 등 리스트가 엄청 나온다. 이외에도 찾아보면 다른 브랜드의 각종 다양한 디자인이 정말 풍부하게 나온다. 뭐가 제일 좋을까?

집에 쌓인 잡동사니를 뒤지다보니, 칼리타 스타일 모양인 코맥 드리퍼 서버 세트가 나왔다. 언제 샀던걸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재질은 플라스틱인지 트라이탄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그런 드리퍼다. 그리고 다이소에서 사온 하리오 V60 스타일 드리퍼와 스탠 드리퍼가 더 있다. 그냥 이거면 충분했다. 욕심 같아선 하리오 스위치나 칼리타 웨이브가 탐나긴 한다. 그런데 내 손으로 내린 커피가 드리퍼를 바꾼다고 얼마나 더 좋아질지 확신이 없다. 그냥 있는 걸로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었다. 이외에 내열 강화유리 계량컵 100ml와 500ml가 하나씩 있다.

언제 왜 샀던건지 기억이 안 나는 코맥 드리퍼 서버 세트.

핸드밀은 적당히 직구로 타임모어 C3s를 샀다. 코만단테는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보였고, 홀츠클로츠 E80은 내가 쓰는 사용 빈도 대비 비치를 위한 공간 낭비가 심해보였다. 적당히 한 박스에 드리퍼, 서버, 여과지, 핸드밀 등을 그냥 몰아넣고 꺼내서 쓰는 정도의 공간만 쓰고 싶었다. 전기포트는 주구장창 오래전부터 써오던 전기포트가 있었으니, 이 정도면 핸드 드립을 위한 적당히 넉넉한 장비를 갖춘 셈이다.

한 종류 원두를 다 먹고 분해해서 청소해보면, 커피 미분이 엄청 나온다.

보통 200g 원두를 사면, 1회당 20g씩 쓴다. 아! 커피 용량은 커피 계량컵이 있다. 코맥 드리퍼 서버 세트에 같이 끼어온 작은 플라스틱 스푼 모양 컵이다. 대충 한 컵에 10~12g 정도니, 미세한 20g을 재서 쓰진 않는다. 이 커피 계량컵으로 2컵을 핸드밀에 넣어 분쇄한다.

첫 경험하는 원두일 땐, 서버보단 컵에 커피를 받는다. 컵 3개를 나란히 두고, 뜸용 50ml와 1차 추출 100ml을 첫번째 컵에, 2차 추출 100ml를 두번째 컵에, 3차 추출 50ml를 세번째 컵에 각각 구분해서 내린다. 대충 합계를 내보면 원두 20g에 300ml 물을 썼으니 비율은 1:15다.

주로 3차 추출분은 잡미라 부르는 쓸데 없이 쓴 맛만 남아 있다. 가끔 정말 좋은 원두구나 싶은 때는 3차 추출분도 즐기기 좋은 쓴맛인 경우도 있다. 대충 가격 기준으로 200g에 13000원 이하에서는 3차 추출분까지 즐기기 좋은 원두를 만난 적은 없다. 비싼 건 확실히 이유가 있다는 걸 이럴 때 깨닭게 된다.

첫 경험한 원두의 첫번째 테스트에서 3차 추출까지 다 만족되는 경우라면 그냥 그렇게 계속 먹으면 끝이다. 만약 3차 추출분을 버린 경우라면, 두번째 테스트에서는 2차 추출을 50ml로 하고 세번째 컵에 50ml를 내린다. 첫번째 테스트때 합쳐서 맛을 봤던 2차 추출에서도 앞 부분과 뒷 부분 맛과 향을 구분해서 기준선을 정하기 위해서다. 여기서 정말 별로인 원두와 중급 원두가 갈려진다. 정말 별로인 원두는 세번째 컵 50ml를 버리게 되고, 최종으론 뜸용 50ml 포함해서 200ml 물만 쓰는 커피가 나온다. 비율로 치면 1:10이다. 그리고 다음번 재구매시에 참고용할 수 있게 어딘가 잘 기록한다. 이 부분을 더 공부하고 싶다면, '커피 수율'이란 단어로 찾으면 된다. 나는 거기까진 안 가고 싶어서, 대충 개념만 이해하고 비율만 어렴풋이 정리할 뿐이다.

이 정도만으로 내린 커피도,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먹을 때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향과 맛을 내는 정도가 나온다.

장인의 손과 내 손은 다르다

나는 차라리 비싸거나 좋은 원두는 그냥 장인의 손으로 내린 커피를 돈 주고 사먹기로 했다. 내 손으로 내리는 커피는 일정 수준 이하의 원두를 골라서 먹기로 했다. 괜한 실패 비용을 낮추기 위함이다.

그래서 번거롭지 않게 제어할 수 있는 요소만 최대한 바꾸면서 레시피를 찾는다. '입자 굵기', '물 온도', '추출 속도' 이 셋은 그리 힘들지 않게 금방 금방 제어할 수 있다. 물론 추출 속도를 1초 단위로 바꾼다는 의미는 아니다. 드리퍼 종류를 바꿔버리거나, 우려내는 시간 자체를 컷 한다는 의미니까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저울도 안 쓰고 대충 눈대중과 컵대중으로 계량하는데, 1초 단위 조절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