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타먹는 커피믹스도 커피고, 뚜껑을 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캔커피도 커피다. 지금 내가 즐겨먹는 커피가 캡슐커피와 핸드드립이 전부인지 되짚어보면 절대 그렇지 많다. 대략 비율상 캡슐 커피:핸드드립:분말 커피:액상 커피는 6:2.5:1:0.5 정도이려나? 양으로는 그렇고 비용으론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분말 커피와 액상 커피 비율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과 이들도 이들만의 맛과 향이 있어서 계속 찾게 된다는 점이다.
아마 이들의 특징은 딱히 도구가 필요하지 않고, 가장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일테다. 가끔 사골 육수나 라면 스프와 비슷한 결이 아닐까 싶은 상상을 할 때도 있다. 아무튼 그만큼 간편하게 즉결 제조한다는 건 엄청난 편의다.
분말 커피: 분무 건조 커피(SD)와 동결 건조 커피(FD)
군대가기전까진 분말 커피도 나름의 분류가 있다는 걸 몰랐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 군생활때까진 난 달달한 믹스 커피만 즐기고 있었다. 부대 행정반 바로 앞에는 커피 자판기가 있었고, 그때 우리 보급관님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을 동전을 무한(?) 보유와 제공 중이었다.
요즘은 자판기 커피를 거의 안 먹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자판기 커피에는 일반 커피와 고급 커피 버튼이 굳이 나눠져있다. 행정반 앞 자판기도 그랬다. 어느 날인가 행정반에 들린 다른 중대 부사관이 커피 심부름을 시켰었다. 평소처럼 그냥 달달한 밀크 커피를 뽑아왔더니, 다른 중대 부사관이 밀크 커피는 나보고 먹으라며, 자긴 블랙만 먹으니 고급 블랙으로 뽑아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판기 커피에서 블랙을 먹는 사람도 그날 처음 봤던 것 같지만, 고급 커피는 무엇이 다른건가 궁금증이 생겼다.
어느때처럼 자판기 담당자가 커피를 채우러 부대로 왔다. 옆에 쫄래쫄래 따라가서 고급이랑 일반 커피는 뭐가 다른지 슬쩍 물었다. 자판기 커피통에 가루를 채우며 보여준 가루는 엄청 달랐다. 일반 커피는 모래보다 가느다란 가루였고, 고급 커피는 굵은 덩어리였다. 이게 서로 등급이 다르단 걸 그때 처음 알았다.
후에 다시 찾으니, 가느다란 가루는 분무 건조 커피(SD, Spray Dried)였고, 굵은 덩어리 가루는 동결 건조 커피(FD, Freeze Dried)라는 구분이 있었다. 대충 브랜드로 치자면 맥스웰하우스는 SD, 맥심은 FD다. 설명상으론 FD가 SD보다 향과 맛을 더 잘 보존하는 방식이라고 돼있다.
요즘은 단순히 입자 크기만으로 100% 구분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FD를 다시 잘게 갈아서 고운 입자로 바꿔 나오는 제품도 있다. 이건 그냥 브랜드를 따로 하나하나 찾아보는 방법이 최선일테다. 가루 크기만 보고서 SD라 생각하고 먹은 커피에서 FD보다 진한 향을 느끼는 날이 최근들어 더 많아졌다. 그래서 찾아보면 SD가 아니라 FD였다. 단순 FD 상태에 원두 미분을 더 섞는 방식도 있으니, 이 계열도 끝없이 진화중이다.

아! 분말 커피는 편의성말고 다른 특징이 하나 더 있다. 가향을 좀 더 쉽게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가향 커피가 헤이즐넛 커피다. 믹스 커피 중에 헤이즐넛 커피를 먹어보면, 헤이즐넛의 고소한 향과 맛이 정말 잘 섞여있다. 내가 먹는 맥널티 아이리쉬크림 인스턴스 커피도 평소 먹는 인스턴스 커피와는 완전히 다른 진하고 독창적인 향을 준다. 분말 커피도 하나씩 찾아먹다보면 이런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세상에 먹어봄직한 원두 커피를 다 먹어보기도 힘들텐데, 분말 커피도 참 다양하게 많이 나온다.
액상 커피: 바로 먹는 RTD와 희석해서 먹는 원액 커피
액상 커피도 진지하게 찾아보면, 엄청 큰 세상이 있다. 크게 RTD(Ready to Drink)와 원액 커피류로 나누면 될 듯 하다.
RTD
레쓰비는 고등학교 졸업후에는 추운날에 온장고에서 꺼내서 주머니에 넣고 손난로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그땐 몰랐다. 이런걸 RTD라 부르는지도. 레쓰비나 조지아 같은 캔커피가 대표적인 RTD다. TOP나 프렌치카페처럼 플라스틱 컵에 든 커피도 RTD다.
레쓰비처럼 손난로로 쓰기 위한 형태가 아닌, 진짜 음료로 된 RTD를 내가 찾아 먹었던 건 칸타타와 조지아가 처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제대한 후에 종종 프림은 없지만 달달함은 맛볼 수 있는 커피가 끌리는 날이 있었다. 딱 그 시기에 칸타타와 조지아가 출시됐었다. 거기다 용기 자체가 캔이라 냉장고에 넣어두고 시원하게 먹기 좋으니, 여름엔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은 RTD를 따로 지정해서 찾아먹진 않는다. 잘 사먹지도 않는다. 다만 가끔 나이 많은 동네형이랑 만나면, 조지아 맥스를 먹는다. 이건 그냥 그 형과의 루틴이다. 특정 제품에 루틴이 있다니, 말하고 보니 무진장 간지러운 이야기 같다.
원액 커피
내가 원액 커피를 따로 사먹는다면, 그건 콜드브루일 확률이 90%다. 콜드브루 자체는 집에서도 쉽게 제조할 수 있지만, 확실히 사먹는 콜드브루가 내가 제조할 때보다 더 다양하고 풍성한 맛을 볼 수 있었다.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에서도 콜드브루 원액을 판매하기도 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정말 다양한 콜드브루를 쉽게 찾는다.

10년전쯤인가, 카페에서 가끔 먹던 콜드브루의 특징적인 향이 문득 생각나서 포에 든 콜드브루를 처음 접했다. 20~30개가 한 패키지에 들어있었는데, 안에 향 종류도 다양하게 들어있었다. 큰 페트에 1종만 들어있는 콜드브루는 생각보다 빨리 질렸었는데, 다양하게 들어있는 포 형태 콜드브루는 딱 그 단점을 바로 해소할 수 있었다. 앰플에 넣어서 파는 형태도 있다.
다만, 원액 커피의 농도는 구매하는 브랜드나 제품마다 일률적이지 않아서 획일적인 레시피를 구성하긴 힘들었다. 포 용량도 제품마다 다르니, 비율로 딱 찝기도 힘들다. 포나 앰플마다 용량이 20~30ml로 편차가 꽤 있고 농도도 다르니, 내가 주로 쓰는 375ml 컵 한잔에 물과 얼마 비율로 희석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었다. 이게 또 너무 연하면 향도 많이 죽고 심심하지 않은가.
이제는 일부러 원액을 사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물이나 사은품으로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조차도 빈도는 점점 줄어드는 중이다.
분말 커피는 뜨거운 커피로, 액상 커피는 차가운 커피로
100℃ 물 90ml와 20℃ 물 10ml를 섞은 물 100ml는 몇 도일까? 열량 보존 법칙으로 상온 손실이 없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92℃다. 현실에선 섞으면서 상온으로 손실되는 에너지가 있을테니 대충 85~90℃ 사이쯤 될테다.
거꾸로 0℃ 물 90ml와 20℃ 물 10를 섞은 물 100ml는 몇 도일까? 마찬가지로 열량 보존 법칙으로 상온 손실이 없다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2℃다. 현실에선 섞으면서 상온으로 손실되는 에너지가 있을테니 대충 5~10℃ 사이쯤 될테다.
이 온도를 왜 계산했느냐 하니, 분말 커피와 액상 커피가 가진 편의와 효율을 분리하기 위해서다. 희석하는 베이스 물 온도와 가까운 선에서 오래 유지하려면 분말이나 원액의 온도가 베이스 물 온도와 최대한 근접할 때 효율이 좋다. 그래서 나는 분말은 거의 대부분 뜨거운 커피로 먹고, 액상 커피는 차가운 커피로 먹는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손난로로 쓰는 레쓰비 조차도 다 식어서 온기가 없는 차가운 타이밍에 먹었던 것 같다. 겨울이라 더 빨리 식었을테다.
뭔 커피 하나에 효율을 따지느냐 싶겠지만, 그냥 그렇게 만족감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욕심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