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블로그 강의 요청이 왔다

2026-04-12

검색 필터 단어가 뭐였는진 모르겠다. 링크드인으로 기술 블로그 특강 문의가 왔다. 아니, 최초에는 테크니컬 라이팅의 기초와 중요성에 대한 특강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너도나도 어떻게든 AI를 써서 자동으로 글을 채우는 것에 푸욱 빠진 시절이다. 테크니컬 라이터 교육 과정 수강생 대상도 아니었다.

나야 손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기회만 된다면 어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순히 테크니컬 라이팅 자체는 수강생의 수요나 호기심이 있기 힘든 분야라 보였다. 마침 교육 과정 주제 자체가 AI였던지라, 차라리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나 컨텍스트 엔지니어링이라면 적합해 보였다.

시기와 너무 맞지 않는 강의 아닌가요?

나를 찾은 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계획한 특강인지, 내부 회의에서 그냥 탑다운으로 내려온 특강인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아는 사람을 통해 온 연락도 아니었고, 굳이 추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처음 내 답변은 살짝 부정적으로 보냈다.

'개발 경험을 글로 옮기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수강생들', '테크니컬 라이팅의 기초와 중요성에 대한 특강' 이 두 키워드가 2026년 3월 기준의 AI 능력 사이에 괴리감이 있어 보입니다.

돌아온 답변은 처음 요청과는 살짝 다른 방향성이 있어 보였다. 수강생들이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필요한 스킬셋을 "테크니컬 라이팅"으로 포장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사실 더더욱 해당 교육 과정의 강사나 멘토들이 나서서 도와줘야 할 영역일 텐데, 어째서 외부에서 사람을 찾는 걸까.

부정적인 생각은 뒤로하고, 내가 과거에 썼던 자료들이 뭐가 있는지 뒤졌다.

기술 블로그 동기 부여용 발표 자료를 찾았다.

지인 요청으로 2022년 10월에 기술 블로그와 테크니컬 라이팅을 엮어서 간단히 발표했던 자료를 찾았다. 기업에서 기술 블로그를 운영할 때, 서로서로 어떤 것들을 채우고 챙길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걸 그대로 교육 과정 수강생에게 쓰기는 괴리감이 있어 보였다.

2022년 10월 발표 내용을 지금 보니, 뭔가 슬라이드 순서가 엉켜있다. 왜지?

특강 요청을 하신 분도 어필한 목표가 있으니, 이 자료를 재활용하더라도 꽤 많은 부분을 업데이트해야 할 것 같았다. 하물며, LLM이 본격 궤도에 올라선 시점이니, 그것도 같이 반영해야 할 테니까.

특강 예정일까지 4주 정도밖에 안 남았지만, 기본 토대로 쓸 수 있는 자료가 이미 있으니 해볼까 싶었다. 예전 발표 자료 파일을 공유해 주고, 강의 진행을 위한 논의를 조금 더 했다.

기존 수료생의 후기가 너무 없다.

시절이 변한 걸 내가 적응하지 못한 걸까? 이메일로만 계속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공식적인 업무 대화라 여기고, 메일로 이력 추적할 수 있다는 건 분명 장점이다. 다만, 서로 아무런 인스턴스식 메시징이나 전화 연락 없이 메일로만 이렇게 논의하니, 특강 진행을 위한 진도가 나가는 건지 느낌이 잘 안 왔다. 간단한 화상 미팅이든, 전화든 뭐든 해봄 직한데 안 온다. 그러고 보니 내가 먼저 전화해서 물어도 됐을 텐데, 나는 왜 전화를 안 걸었던 걸까?

이번 수강생 기수 숫자가 상당히 누적된 숫자였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 자료 업데이트를 하기 위한 기본 배경을 좀 알고 싶었다. 예시로 들만한 적당한 소재를 찾아야, 발표 자료 흐름이나 주로 하는 실수 등을 미리 견본으로 보여줄 테니.

그런데, 후기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왜일까? 자랑하는 수료생의 취업 결과도 한가득임에 불구하고, 여러 기수가 상당히 오래 쌓였는데도 후기가 너무 없다. 운영 측에서 제한을 걸었을까? 아니면 정말 세월이 변했나? 어차피 다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하는 시절이니, 텍스트로 남기는 블로그 따위는 안 하는 걸까?

이상했다. 그렇다고 후기가 왜 이렇게 없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결국 통상적인 감으로 적당한 예시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검색창을 닫았다.

강의 세부 조건 조율은 너무나 힘들다.

프로필 이력서를 보내니, 그들의 테이블에 맞춘 강의료가 산정됐다. 아마도 거의 최하급 강사로 마킹된 느낌이었다. 어차피 강의로 먹고사는 중도 아니고, 이걸 따져봐야 몇만 원 차이일 테니 무의미한 리소스 낭비라 보였다. 그래서 강의료에는 일절 아무런 부정하지 않고, 계약서 초안을 받았다.

계약서엔, 일부 조건에 부합하면 강의 자료의 지식재산권 자체가 영구적으로 넘어간다는 조항이 있었다. 나름 내 커리어를 다 털어서 넣은 스토리라인이 모조리 한 번에 법적으로 남에게 넘겨야 한다니, 거부감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강의료 테이블이 최하단인 것은 그러려니 하더라도, 내 커리어를 모조리 털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조건이 부합할 때만 발동하는 조항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부합할지 어떨지 판단 주체가 모호하다. 아무리 이메일로 서로 주고받은 내용이 있다고 한들, 계약서가 있다면 그건 최우선 조건이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에게 되돌아올지 모를 지식재산권 압박을 0.0001%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 "이번 특강을 위해 제작하는 강연 자료의 저작권, 지식재산권 등은 저한테만 있는 것으로 하고 싶은데요"라고 의사를 전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본인들이 지식재산권을 갖더라도, 2차 활용 시에는 저자와 협의 후에 쓰겠다는 그들의 계획만 반영돼 있을 뿐이었다.

간곡히 두세 번 내 의사를 전달했다. 메일 답장으로는 조건 부합 요소를 절대 만들지 않겠다고 하지만, 계약서에 해당 문구가 남아 있다. 서로 신의라고 할 평판이 전혀 쌓여있지 않은 상태에서 메일로만 증거를 남기기엔 너무 신뢰가 약한 상태 아닐까.

담당자를 괴롭히고 싶진 않다.

나를 섭외하고 특강 내용을 조율하는 담당자는 그저 그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담당자도 어쩌면 이 계약 건으로 회사와 나의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일 수 있다. 회사는 절대 바꿀 수 없다고 하고, 나도 바꿀 수 없다고 하고, 강연은 진행했으면 좋겠고, 어떻게든 일은 진행해야겠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담당자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어차피 그냥 일이니까, 되는 데까지만 하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일까, 어떻게든 꼭 일을 진행하고 싶어하는 입장일까? 마지막에 받은 메일에서도 계약서에는 내가 불편해하는 조항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내가 고개 숙이고 동의하지 않는 이상, 마지막 메일에 답장할 일은 없을 테니 이렇게 그냥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남은 건 업데이트 완료한 자료뿐

특강 계약 진행과 별개로, 발표 자료 업데이트는 마쳤다. 뭔가 더 넣고 싶은 욕심이 생기던 중, 길벗 출판사에서 발행 예정인 책 광고를 봤다.

어찌 딱 이 시점에 번역서가 이렇게 나오는 걸까? 목차를 보니, 여차하면 수강생들은 이 책 사서 읽으면 될 거 같단 생각도 든다. 내가 풀어가는 과정이랑은 차이가 좀 많아 보이지만, 결국 결은 같지 않겠는가.

말이 업데이트지, 사실상 완전히 새로 만들었다. 왜 만들고 보니 109장일까?

마침, 발표 자료 만든 김에 몇몇에게 먼저 공유했다. 양이 너무 많은 탓일까? 돌아오는 피드백에서 추가로 생긴 궁금증이 있진 않았다. 역시, 이 콘텐츠는 수요가 없는 공급자 중심의 콘텐츠가 맞는 것 같다. AI로 Readme, 커밋 메시지, 이메일 초안, 주간 업무 문서, 리뷰 문서 등등 모조리 자동으로 완성하는 시절이다. 시니어는 다 자동으로 쓰는 걸 주니어는 손으로 쓰라고 보채는 건, 극한의 미스매칭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