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 클릭 채터링 지옥에 빠진 로지텍 G304 마우스

2026-03-21

회사에서 기본 지급품으로 주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불편할 때가 있다. 뭔가 키보드는 푹푹 꺼지듯 눌러지고, 마우스 커서는 평소 내가 쓰던 감도와 다르다. 무시하고 쓰자면 쓸 순 있다. 다만, 타이핑이 느리거나, 오타가 나온다. 컨트롤+C를 누르는 행위조차 오타가 생긴다. 여러 노트북과 장비를 썼기 때문에 다른 습관이 몸에 뱄을 순 있지만, 이렇게 적응을 못 할 리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괜한 업무 저해 요소를 유발한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노트북을 고를 때도 키 배열을 따졌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노트북을 고를 때도 키 배열을 따졌었다. 컨트롤키와 Fn키의 순서, 윈도우키 위치, 방향키 배열, F키 배열 이외에도 스페이스바 길이도 따졌던 것 같다. 비슷한 라인업 모델일 땐, 연식이 바뀌어도 최대한 기존 배열을 유지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라인업을 유지하며 쓴 노트북은 없다. 소니 바이오, HP 엔비, 레노버 요가, 에이서 트래블메이트, 레노버 씽크북, HP 엘리트북, LG 그램... 그러고 보니 전부다 13~14인치 대역이다. 내가 선호하는 사이즈다. A4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 전원 버튼과 Delete 버튼 위치만 조금 다르고, 대부분 비슷한 배열이었다.

데스크탑 키보드를 노트북과 맞췄다

데스크탑 키보드 숫자키 폭만큼, 마우스를 잡는 오른팔로 인해 몸 중심선이 오른쪽으로 기우는 것도 싫었다. 데스크탑도 노트북도 양손 검지 손가락은 F키와 J키에 맞춰서 내 몸의 중심선이 잡혀있지만, 마우스를 잡느라 자연스레 몸은 오른쪽으로 기운다. 허리 디스크 치료를 받은 나로선 엄청 신경 쓰였다. 그런데 노트북에서는 중심선이 꽤 잘 맞았다. 숫자키가 없어서 줄어든 공간만큼 마우스가 몸에 더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스크탑에서도 노트북과 배열을 비슷하게 맞추려는 의도로, 사용 빈도가 매우 낮은 숫자키를 포기하고 텐키리스로 옮겼다. 숫자키 폭만큼 공간이 확보했다. 더 당겨쓰도록 배열을 간소화한 다른 키보드도 있었지만, 숫자키만 없는 형태가 나름 대중적인 표준 폼팩터라 생각했다.

키보드로 확보한 공간과 모니터 해상도 상승이 맞물리니, 마우스 커서 움직임 감도가 신경 쓰였다. 이걸 커버하기 위해, 가격과 성능 중간 절충선에서 로지텍 G304를 골랐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흰색으로 깔맞춤까지 했다. 딱 좋았다.

약속의 2년인가

회사와 집 모두 마우스를 로지텍 G304로 바꿨다. 똑같은 마우스를 또 사다니... 노트북도 같은 라인업 모델을 안 샀었는데, 마우스를 똑같은 걸 세대교체도 없이 또 사다니... 그만큼 마음에 들었다.

회사와 집 둘 다 문제는 2년쯤 지난 후에 생겼다. 난 분명히 가볍게 1클릭만 했는데, 종종 더블 클릭으로 인식했다. 처음엔 이게 더블 클릭 오류란 생각을 안 했다. 매우 간혹 생겼었으니까. 발생 빈도가 점점 늘었다. 키보드 채터링을 이미 겪어봤지만, 마우스도 그 줄 몰랐다. 로지텍 G304 더블 클릭을 검색했다. 같은 사례에 대한 이야기를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구글링 1페이지에 바로 잔뜩 나왔다.

로지텍 G304에는 옴론 차이나 스위치가 붙어있고, 이 스위치가 고스펙 게이밍을 위해 구현된 방식이 이런 고장을 쉽게 야기한다는 결론이었다. 딱 G304가 아니더라도, 옴론 차이나 스위치를 쓰는 마우스라면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절묘하다. 약속의 2년...

그놈의 알리

직접 스위치를 주문해서 납땜을 하며 수리해서 쓰는 이야기도 꽤 많았다. G304를 다시 한 대 더 사더라도 똑같은 운명의 굴레라면, 스위치만 교체하는 것이 좀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고장 날 때마다 G304를 살 건 아니지 않은가. 지슈라는 나에겐 너무 과분한 모델이라 보였고, MX 시리즈나 다른 회사 마우스는 괜히 키보드랑 페어링 맞춰 쓰기가 어색해 보였다. 하필 또 내 키보드는 로지텍 G913 TKL이다.

누군가에겐 천국일 수 있으나, 내게는 너무 어려운 그 곳. 알리.

스위치는 어디서 주문하는가? 알리다. 그놈의 알리. 아무리 알리를 뒤져도 정확히 어떤 스위치를 써야 하는지, 어느 판매자한테서 사야 하는지 고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혹시 이게 아니면 어쩌지? 납땜까지 할 각오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월등한 판매량이 있는 상품도 보이지 않았다. 검색은 계속 뜨고, 비슷한 상품도 참 많았다. 그놈의 알리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했다.

핫스왑 스위치 교체 방식

알리를 뒤지면서 선택은 못했지만, 납땜을 하지 않아도 스위치를 교체하는 방법을 찾았다. 슬롯에 꽂기만 하면 되는 핫스왑 기판을 쓰는 방법이었다. 납땜이라는 부담을 덜었지만, 다시 또 선택의 기로였다. 결국 기판을 추가로 골랐을 뿐, 스위치는 고르지 못했으니까...

2핀 스위치와 저소음 스위치

G304에 기본 장착된 스위치는 3핀 스위치다. 그런데 스위치를 찾다 보면 2핀 스위치도 많이 있었다. 이미 수리해서 쓰는 분들의 후기를 보면, 위치만 맞추면 2핀 스위치도 잘 동작한다고 돼 있었다. 핫스왑에 2핀 스위치를 꽂으면 된다는 의미였다.

이걸 계속 찾으면서 마우스를 클릭하다 보니, 문득 귀에 딸깍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오기 시작했다. 이왕 바꾸는 스위치라면 저소음이나 무소음 스위치로 바꿀 수 있으리란 가정으로 스위치를 찾아보니, 저소음 또는 무소음 스위치도 있었다. 유튜브 리뷰에 소리가 올라온 스위치 중에선 없었지만, 제품 설명에는 'silence'라 적힌 스위치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놈의 알리... 도저히 어디서 사야 정상 제품이 올지 모르겠다.

국내에서도 팔더라

혹시나 싶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 검색을 했다. 어라? 부품이 있다. 정작 가격도 비교해 보니 알리보다 쌌다. 알리의 메리트가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이었다. 그래도 스위치는 끝까지 선택 장애가 왔다. 그래서 혹시나 스위치 문제가 생기면 핫스왑을 믿기로 하고, 스위치 2종류를 주문했다. 직접 써보고 마음에 안 들면 나머지 스위치로 바꿔 낄 생각이었다.

핫스왑 기판을 고르고, 스위치도 고르고, 분해하다가 마우스 피트가 찢어질 상황을 대비해 마우스 피트도 골랐다. 대략 2~3세트 느낌이 되도록 주문했다. 어차피 나에겐 더블 클릭 장애가 있는 G304가 2대가 있지 않은가.

핫스왑 기판은 3개, 스위치랑 피트는 각 4개씩. 위 가격은 총합 가격이다.
  • G304 핫스왑 기판 고급형
  • 후아노 옐로우
  • 후아노 저소음 핑크
  • G304 마우스 피트 블랙

차분히 배송을 기다렸다.

뭔가 세트 같은 느낌이지만, 다 따로 사서 그냥 내가 한 봉투에 몰아 넣은 거다.

스위치 교체

막상 부품을 받고 나니, 긴장됐다. 혹시 분해하다가 스위치 이외 엄한 부분을 파손시켜서 아예 못쓰게 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바닥면 피트를 뜯어내고, 나사를 풀었다. 하판을 떼려니 어딘가 걸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른 사람의 후기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또 조심스럽게 힘을 주고 분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하판 분리와 하판 합체가 제일 번거롭고 조심스러웠다.

테세우스 배의 시작이다. 핫스왑 기판 사이즈가 정말 깔끔하게 잘 맞게 들어간다.

열어서 하나하나 다 분해했다. 분해하다 보니 사이드 버튼도 눈에 들어왔다. 고장은 안 났지만, 같이 바꿀걸 그랬나. 이왕 한번 분해했을 때 한 번에 다 바꾸는 게 편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미 하판은 열었고 내가 가진 부품은 한계가 있었다. 최초 목표대로 좌클릭과 우클릭만 교체하기로 했다.

기존 스위치 기판에 연결된 전선이 은근 꽉 붙어있었다. 마치 글루건이나 접착제로 붙여놓은 느낌이었다. 어차피 안 쓸 기판이니 그냥 잡아 뜯었다. 벗겨진 피복 잔해는 드라이버로 벅벅 긁어냈다.

핫스왑에 스위치를 꽂고, 조립하지 않은 채 조심스레 전원을 연결해서 시운전을 했다. 클릭도 되고, 이상 동작은 없었다. 그대로 조심스레 재조립을 했다.

테세우스의 배인가

이제 더블 클릭 채터링은 사라졌다. 클릭도 조용하다. 뭔가 애착도 생긴다. 테세우스의 배로 가는 첫걸음을 뗐다. 좌우 클릭을 누르는 느낌은, 나머지 버튼과 확실히 다르다. 주로 누르는 버튼이 좌우 클릭인 걸 감안하면, 뒤로 가기와 앞으로 가기 버튼을 종종 누를 때 어색한 감이 있다.

그래도 더블 클릭 지옥을 벗어나니 너무 좋다. 이게 이럴 일인가 싶다가도, 잘한 일이라 되뇌는 중이다. 더블 클릭 지옥에서 값싸게 도망가기 위해 잠시 썼던 다이소 마우스와 비교하면, 넘사벽의 차이를 느낀다. (내가 쓰던 다이소 저소음 마우스는 이상하게 클릭 자체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왜 이런 데서 성취감을 느끼는 건지, 한방에 이해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