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를 보관하는 속도보다 소모하는 속도를 늘리고 싶다

2026-03-06

정말 오래된 버릇이다. 책, 인터넷, SNS, 주변 지인의 이야기 등등 왠지 모르게 챙겨놓고 나중에 필요할 때 다시 찾아보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조각 정보를 모은다. "나중에 보기", "저장하기", "북마크", "위키", "노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동일한 기능을 쓴다. 하다못해 나는 책 구매도 병행한다. 책 구매량은 확실히 예전보단 줄었지만, 여전히 지금 내 뒤에는 사놓고서 보지도 않은 책이 쌓여있다.

쌓여만 가는 문서 파일 조각과 책을 보며 매번 다짐한다. 이번엔 보고 정리하겠다고... 하지만 그 순간일 뿐, 전혀 그 어느 것도 진도가 안 나간다.

정보가 쌓여가는 속도

대학 때, 실험 리포트를 준비하면서 출처 표기를 위해 도서관 열람실에서 최대한 책을 쌓아놓고 각 페이지를 적어두고 다시 찾아야 했다. 어느 날엔, 지난주에 냈던 리포트에 출처로 적었던 내용을 그대로 다시 쓰기도 했다. 학기가 끝나고 보면 대충 30권 정도 안에서 한 학기 리포트를 위해 참고한 책이 뺑뺑이 돌고 있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정보를 출처 표기하는 것에 대해 인색했다. 그래서 인쇄된 책을 꼭 찾아야 했다. OCR이나 디지털을 거친 책 정보가 없었던 덕분에, 한 장 한 장 뒤져서 찾아야 했다. 마치 영어사전과 옥편을 하나하나 자수에 맞춰가며 찾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30권 정도는 그 학기가 끝나면, 다시 내 손에 돌아오지 않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수업을 위해 샀던 전공 서적만 집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책은 티가 확 난다. 책 크기와 두께로 인해, 물리적으로 내 공간을 같이 소모하는 덕분에 잘 보인다. 무뎌질 뿐이다. 바닥이나 책상 위에 쌓아두고서 다 읽으면 책꽂이에 꽂으리라 마음먹지만, 그때뿐이다. 결국 바닥에 쌓인 책은 책상 높이만큼 여러 줄 쌓여간다. 그나마 일부러 책을 더 사지 않는 효과는 얻는다.

브라우저 탭 쌓기

브라우저 탭 쌓기는 주로 일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기획서, 장애 대응, 브레인 스토밍 등등 다양한 이유로 검색해서 보다가 왠지 나중에 다시 찾아볼 것 같단 느낌으로 탭을 쌓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 브라우저 자체를 2~3개를 쓰게 됐다.

그나마 브라우저에서 탭을 정리하는 여러 기능이 추가되면서 좀 간소해(?)졌다.

메일, 캘린더, 작업 현황판 같은 대시보드 타입만 전용으로 쓰는 전담 브라우저를 하나 지정한다. 검색이나 휘발적인 작업은 다른 브라우저를 쓰는 방식이다. 여러 서비스에 로그인해야 하다 보니, 로그인 계정이 꼬이기 일쑤다. 특히, 구글 지메일 베이스 환경에서는 더 꼬인다. 그나마 회사에서는 최대한 개인 계정 로그인을 안 하기에 조금 낫다. 집에서는 개인 지메일, 학교 메일 2개 이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지메일 세션이 몇 개 더 쌓인다. 매번 로그인하는 귀차니즘을 이겨낼 솔루션으로 모든 계정에 로그인한 탭을 따로 두기를 선택한 결과다.

그냥 열려있는 탭도 많은데, 이런저런 검색 하면서 나중에 볼 거라고 쌓은 탭은 더 많다. 내 브라우저 탭을 본 사람들은 저걸 어떻게 한 번에 그렇게 찾아서 클릭하는지가 더 궁금하고 대단하다고 한다. 내가 봐도 신기하긴 하지만, 나름의 규칙에 맞춰서 탭을 정렬한 덕이 아닐까 싶다.

이 탭은 탭이 열린 근원을 해결하면 닫는다. 프로젝트 단위가 아니다. 태스크 단위로 종료하면 닫기 때문에, 주기가 있을지언정 무한히 늘어나진 않는다. 그래도 도저히 끝이 나지 않아 영원히 닫지 못할 탭으로 보일 땐, 링크로 옮겨두고 닫는다.

링크 모아두기

분더리스트, 포켓, 개인 위키, 노션, 브라우저 북마크 등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링크를 저장했다. 페이스북엔 나중에 다시보기로 저장하는 기능이 있다. 유튜브도 다시 볼 리스트를 만들어서 넣어놓는다. 지금 잠깐 펼쳐봐도 페이스북에 저장한 링크는 끝도 없이 스크롤이 내려간다. 그나마 분더리스트는 서비스를 접었기에 한번 정리할 틈이 있었다. 포켓도 내가 그냥 안 쓰겠다고 마음먹으면서 한번 정리했었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구글독스나 개인 위키에 그 링크를 옮겨둔 채, 페이지가 수십 페이지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저장만 해두고, 사라지고, 뭐였는지도 모르고, 왜 저장했었는지도 모르고...

가끔 EOD가 됐거나, 비공개 글로 바뀌었거나, 도메인이 죽었거나 하는 사유로 못 보는 링크도 마주한다. 하지만 내가 저장해둔 링크를 왜 저장했었는지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너무 크다. 그냥 지워버리자니 찝찝하고, 안 지우고 두자니 양은 계속 불어나고... 가끔 저장했던 링크를 보면, 링크가 자가생식 중인 게 아닐까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브라우저 탭 대비 링크는 삭제 속도가 매우 더디다. 링크 자체를 찾기도 힘들다. 링크로 저장하는 게 가장 공간은 적게 먹지만 가장 재활용률이 낮다.

SNS 채널

페이스북도 SNS이긴 하지만, 그나마 게시판형이라 다행이라 해야겠다. 슬랙, 디스코드 등등 메신저형 SNS에서는 정말 수시로 온갖 대화와 링크가 지나간다. 그 순간 챙겨두지 않으면 다시 찾기 정말 힘들다. 하다못해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지나간다.

몇몇은 봇을 써서 내가 없는 동안 있었던 일을 요약해서 보기도 하고, 그냥 무시한 채 자기 스레드만 보는 사람도 있다.

정말 다시 찾아보긴 하는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집을 정리하다가 확실히 느꼈다. 다시 찾아보지 않는다. 책은 공간만 차지하고, 봤던 책을 내가 다시 열어보는 경우가 희박했다. 그냥 버리자니 아까운 소장욕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컴퓨터를 켜고 저장된 링크를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다. 계속 쌓아두기만 하고, 실제로 다시 돌아가서 링크를 눌러 소모하질 않았다. 의도적으로 계속 자기 제어를 하며 소모를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한 이유다.

그래서 그때부터 매년 초에 매우 간략한 수준으로 한 해 목표를 정했다. 2023년에 정했던 목표를 보니 티스토리 백업/정리, 정기 결제 내역 목록 작성 및 재구성, 위키백과에서 문서 2개 이상 컨트리뷰팅, 트렐로 보드 정리, 보유 도서 목록 정리 등 6~7개 정도였다. 다 했을까? 아니다. 겨우 4개 정도만 다했고, 미완료 목표는 다음 해로 다시 넘겼다.

정보도 쌓이고 소모를 못하는 데, 세운 목표로 쌓이기만 하고 달성을 못 했다. 와... 그래서 2024년부턴 목표 전략을 바꿨다. "OO하기"도 있지만, "OO하지 않기"를 만들었다. To Do와 Not To DO의 싸움이다. 이건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 같다. Not To Do에 술 안 먹기가 들어갔었고 그건 철두철미하게 지켰으니... 그렇게 하고 나니 Not To Do는 달성과 함께 소모가 됐다. 사라졌다. 다시 또 한다면 그건 재생성으로 추가한 것이지, 이월돼서 넘어온 건 아니니까 그나마 심적 부담이 덜했다.

소모하기 위해 소화를 해야 한다

삭제는 소모가 아니다. 소화해서 소모를 해야 한다. 소화했기에 삭제한 거라는 의도를 반영하고 싶었다. 한 번 읽는다고 달달 외울 수 있을까? 그렇다고 계속 반복해서 볼 것인가? 아니다. 다만, 링크를 저장만 했지 그걸 한 번도 안 읽었다는 게 문제다. 그 순간만이라도 읽고 소화를 해서, 비슷한 걸 다음에 또 봤을 때 기억나면 된다. (물론 기억나지 않겠지만...)

정리까지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테다. 누군가는 필사를 한다고도 한다. 나는 필사는 필사 자체가 또 하나의 일이고, 그냥 필사라는 목적에만 매달리게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필사까진 고려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드래그해서 복사 붙이기로 저장하는 것도 잘 하지 않는다. 그 순간 보지 않으면 다시 안 본다는 것. 필요할 땐 결국 검색하거나 AI한테 묻거나... 이게 지금 내 패턴이다.

바로 보고 정리를 하거나, 바로 보고 소화를 해야 한다. 그래야 불어나는 정보를 따라잡고 줄일 수 있다. 줄여야 한다. 다시 또 새 정보가 들어올 테니...